2018 비교과 우수 후기 공모전(의사소통능력 키움 캠프)
- 작성자 정희도
- 작성일 2019-02-14
- 조회수 3318
우리를 움직인 ‘두 글자’
“어느 학과세요?”
“아… 저는 00000과 00학번 000라고 합니다.”
내가 우리 조원들과 만나서 가장 먼저 나눈 대화이다. 책상을 붙이고 마주보고 앉게 된 일곱.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 죄 없는 필통만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손길과 애꿎은 시계에만 고정하는 시선, 제각기 다른 표정과 다른 학과. 살갑게 맞닿아 있는 책상과 달리 우리 조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지난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서울캠퍼스와 천안캠퍼스가 함께하는 ‘의사소통능력 키움 캠프’에 다녀왔다. 제 시간에 맞춰 도착한 강의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언뜻 둘러보기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 100명 남짓 되는 것 같았다. 한 조에 7~8명씩 총 9조로 나누어졌고, 나는 내가 속한 2조 자리에 가서 앉게 되었다. 다른 조들에서는 벌써부터 도란도란 대화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조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기 바쁜 우리 앞에 디자인씽킹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듣는 ‘디자인씽킹’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고, 말 한마디 붙이기가 힘이 드는데 이걸 다 같이 어떻게 하지 싶어 막막했다. 마치 싫어하는 과목의 조별과제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기분이었다. 이유리 강사님께서 큰 주제는 학교생활, 환경 중 하나를 골라서 하라고 하셨고, 학교생활을 주제로 한다면 서울과 천안의 서로 다른 캠퍼스라는 것에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데에 조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큰 주제를 ‘환경’으로 정했다. 나아갈 길을 정하긴 했지만 어려운 주제에 우리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선뜻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강사님께서 “일상생활에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강사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불편하였던 점을 하나 둘 말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 재활용 문제, 미세먼지, 분리수거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자 어느 쪽에선가 돌연 “어? 맞아 이거! 나도 이게 불편했었어”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오로지 디자인씽킹이라는 문제 해결만을 위해 대화를 나누던 우리 조에게서 처음으로 사담이 들려온 것이었다. 고작 한 마디 뿐인데도 허물없는 일상 대화가 참 반갑게도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을 통해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던 것 같다. 그렇게 한결 돈독해진 우리 조에서 나온 여러 주제들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면서도 더 많은 의견과 해결 방안들이 제시될 수 있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최종 주제를 정하게 되었다. 최종 주제를 정한 후, 각자만의 해결 방법을 메모지에 적어서 종이에 붙였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팩 사용, 일회용 컵 대신 개인 컵 사용, 일반 빨대 대신 친환경적인 대나무 빨대 사용, 재활용 기업에 혜택 제공 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도출되었고, 이들은 정책∙제도적 차원, 개인의 노력, 대체품 사용 등의 소분류로 나뉘게 되었다.
여러 방안들 중에서 이미 널리 시행되고 있는 개인 컵 사용하기 외에, 종이팩 사용을 늘리는 방법이 더 손쉽고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종이팩은 다른 용기에 비해 내용물을 깔끔히 먹기 힘들고, 때문에 잔여물이 남아 분리수거 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 조는 종이팩을 사용하면서도 분리수거를 용이하게 하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다. 일단 내 자신에게 ‘왜 깔끔히 먹기 힘들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았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처럼 기울여서 먹을 수 없으니까. 그럼 밑면을 경사지게 만들면?
“그럼 내부의 밑면만 경사지게 만들면 내용물들이 한 쪽으로 모이게 되니까 깔끔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머리 위의 작은 전구가 반짝거렸다. 내 아이디어를 조원들에게 말하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빨대는 기존대로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효과가 없을 테니 대나무 빨대는 어때요?”
옆에 있던 송미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우리 조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밑면이 경사진 우유팩과 친환경적인 대나무 빨대로 최종 아이디어를 정하게 되었다. 내일 있을 발표를 위해 아이디어를 시제품을 만드는 팀과 발표를 준비하는 팀으로 나누고 내일 다시 만나 만들기로 하였다. 아이디어 회의를 끝내자 벌써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그렇게 다사다난하기만 하고 숨 가쁘던 우리의 첫날이 지나갔다.
이튿날, 고작 하루 봤을 뿐인데도 어색하기만 하던 얼굴에서 모두 반갑기만 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목소리, 다른 표정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둘째 날인 오늘은 그랜드캐년 대모험을 하는 날이었다. 주어진 자원과 여러 날씨 변화를 이용하여 출발점에서 다이아몬드 필드에 도착한 후 원광석을 캐내어 다시 돌아오는 게임이었다. 그랜드캐년 대모험의 핵심은 목표설정과 전략,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때문에 먼저 목표를 정한 후 그 목표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것이 우선이었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있는 법이 아니던가. 우리 조는 한국 신기록에 버금가는 4500만 원으로 목표를 정했다. 그 후, 다이아몬드 필드까지 가는 길을 정하는 사람, 자원 관리를 맡을 사람, 날씨 예측을 맡을 사람, 예산 관리를 맡을 사람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하지만 강사님의 설명을 재차 들어도 어렵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어리둥절하기만 한 우리에게 조장을 맡았던 창호오빠의 도움은 정말 컸다. 작년에 의사소통능력캠프에 한 번 참여했던 경험이 있던 창호오빠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전략을 세우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창호오빠의 리드에 따라 날씨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출발하는 것보다는 출발지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충분한 정보를 획득한 후에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조의 전략은 나름 세세하고 당찼지만, 요동치는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날씨에 환호성이 들리는 조가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 조들도 많았다. 우리 조에서 날씨 예측을 맡았던 윤진이의 관찰력이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매일 매일의 날씨를 기록한 덕에 주기를 알 수 있었고, 덕분에 다음날 날씨를 예측할 수 있었다. 목표 설정과 그에 맞는 전략 세우기, 출발 전 충분한 정보 획득과 날씨 예측, 효과적인 자원 활용의 결과 우리 조는 최종 금액은 3800만 원. 아쉽게 한국 신기록을 세우지는 못 했지만, 우리 학교 내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전략을 세우기 위한 충분한 의사소통과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히 임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시제품 만들기와 발표 준비를 모두 끝낸 우리 모두는 발표를 위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캠프 기간 중 이 순간이 나에게 있어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그림으로 다가왔다. 발표가 끝나자 질문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는 나와 달리,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기 위해 앞다투어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위해 기다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그들의 열정이 나에게까지 보이는 것 같아 감동적이기도 했다. 또, 내가 제품에 대한 발표 내용을 들으며 했던 단지 1차원적이고 기본적인 생각에 비해, 질문을 했던 학생들의 생각은 차원이 달랐다.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구나’ 싶기도 했고, 막막하고 어려운 질문에도 능숙하게 대처하고 대답하는 발표자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간 내가 너무 안일하게만 생각하고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되는 시상식, 받았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을 하긴 했지만, 다른 조들이 놀라울 정도로 너무 잘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진 못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우리 조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우리 조가 호명되는 순간 우리는 환호성을 내질렀고 서로 얼싸 안고 악수를 나누기 바빴다.
솔직히 처음에는 캠프 일정에서 디자인씽킹과 그랜드케년이라는 단어 보고 적잖이 당황을 했었다. 의사소통능력캠프라고 해서 나는 그저 다양한 의사소통 기법과 화법들의 이론에 대해 배울 줄 알았는데, 도대체 이 과정들이 의사소통능력과 무슨 관련이 있나 미심적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디자인씽킹부터 그랜드케년 대모험까지, 그 무엇 하나 조원들과의 의사소통과 협동이 없었더라면 이룰 수 없었을 값진 결과임을 딱딱한 글이 아닌 온 몸으로, 온 근육들로 배운 것이었다. 딱딱하게 얼어붙어있기만 했던 우리를 움직인 모든 힘은 소통이었다. 모두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서로가 있고 또 서로 대화를 나누고 도왔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어색하기만 하던 얼굴들은 하루 사이에 반가운 얼굴이 되었고, 이제는 어느덧 보고 싶은 얼굴이 되어 있다. 이 기회가 아니었더라면 언제 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만큼 배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틀 동안 천안에서 서울로 버스 타고 오고 가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힘든 것보다 얻어가고 배워가는 것이 더 많았던 이틀이었다. 덕분에 너무나도 값진 배움과 경험, 인연들을 양품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고, 가득 안은 두 팔이 무겁게 느껴지기는커녕 다만 여전히 짜릿할 뿐이었다. 이번 캠프를 통해 다른 학생들로부터 배운 열정과 협동, 소통의 힘은 내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더 높은 계단으로 이끌고 내가 힘에 부쳐 주저앉았을 때 나를 일으킬 큰 원동력이 될 것 같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내게 온다면, 그때에는 내가 지금과는 달라진 모습이 되어 나를 감동시킨 학생들이 그러하였듯이, 나도 질문할 순서를 기다리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주소: https://www.instagram.com/p/Bp_2xS0lUT-/?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